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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원 >
다이아몬드라는 단어는 정복할 수 없다는 뜻을 가진 그리이스어
adamas로부터 유래되었다.
그러나 그리이스인들은 단단한 금속(철합금)을 묘사하는데 같은 말을
썼다. BC 475년경에 그리이스 극작가 에스킬러스는 그 말을 프라미씨
어스의 쇠사슬을 묘사하는데 사용했고 로마의 시인 버질 (70∼19 BC)
은 Solid adamant로서 지옥의 문기둥을 묘사했다.
 
얼마 후 오비드(BC 43∼AD 17)는 아다마스를 철과 같이 단단한 금속
을 언급하는 데 사용했다.
" 다이아몬드" 와 "애더먼트(Adamant)" 란 단어가 최초로 영어의 부분이 되었을 때 그들도 또한 언제
나 금속을 언급했다.
 
18세기 영국 시인은 윌리엄3세를 ".....전쟁으로 유명한 화성과도 같으며 갑옷이 에더먼틴처럼 단단한
외관을 띠고 있다." 라고 묘사했다.
 
에더먼트와 애더먼틴의 단어는 또한 자석과 천연 자석을 의미한다.
제프리 쵸서는 아다마스를 철 또는 천연 자석으로 켄터베리 이야기에서 사용했다.
그는 보석을 표현하는데 디어먼(Dyomaunt)을 사용했고 그리고 세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이라는
작품에는 "당신의 Adamant같은 강한 마음이 나를 당신에게 끌리게 했다." 라는 말을 썼다.
 
오늘날 다이아몬드는 결과적으로 보석을 위한 이름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애더먼트는 오직 꿰뚫을 수 없는 어떤 것에 시적인 또 미사여구의 표현으로서 사용된다.
 
< 유래와 전설 >
유럽에서는 15세기까지 오직 왕들만이 힘과 용기 그리고 천하무적임
을 상징하려는 의미로 다이아몬드를 착용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은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서 그것의 위
상을 형성해 왔다.
큐피트의 화살촉이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다이아몬드는 여러 가지 낭만적인 전설을 가지고 있다. 'Diamond'는
그리스어 아마다스 'Adamas'에서 유래되었고, 이것은 '정복할 수 없
다'라는 의미와 '영원한 사랑'을 동시에 뜻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다이아몬드의 빛을 사랑의 영원한 불꽃이라고 생각했었다.
다이아몬드는 정복할 수 없다는 뜻의 그리스어인 아다마스(Adamas)로 쓴 이유는 르네상스 시대까지
사람들이 만들어낸 불이나 열로도 다이아몬드가 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이아몬드는 불교에서도 중요한 상징물이었다. 사람들은 한때 다이아몬드가 하늘의 비나 이슬에 의해 생성되었던 것이라고 믿었다
 
다이아몬드가 번개에 의해 형성되어졌다는 다른 말은 고대의 산스크리트어에서 퍼져 나왔으며, 그곳
에서 다이아몬드 (vajra)라는 말이 "벼락(thunderbolt)"을 의미한다. 바이라(vajra)는 완전한 믿음의
평온과 정신적인 안정, 명확한 사고, 자유로운 정신을 뜻한다.
또한 사막에서 갈증에 허덕이던 어머니가 다이아몬드를 넣은 꿀을 마시자 금새 다 죽어가는 아이에게
젖을 줄 수 있어 아이를 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성들이 반드시 간직해야 하는 수호석 이라고 여겨졌다.
승리와 성공의 정점을 상징하기도 하는 보석으로 왕의 머리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돌이라고 여겨 주
로 왕관의 중심보석으로 사용되어졌다.
또한 부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행운의 상징이라고 믿었는데, 오늘날 결혼 때 사용하는 의미는 바로 이
러한 믿음에서 오는 것이다.
또한 젊은 연인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는 것은 서로의 사랑이 영원하리라는 믿음를 가지기 때문이다
 
< 다이아몬드 반지 >
오래 전에 다이아몬드는 남성 독점이었다. 여성들의 다이아몬드 착용
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15세기에 프랑스의 찰스 7세의 연인인 아그네스 소렐은 대중
앞에 다이아몬드를 착용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약혼 반지로 사용한 때는 1477년 오스트리아에서
있었다. 버건디의 공작이었던 찰스는 다이아몬드 수집광이었으며
다이아몬드 컷팅의 후원자였다. 그의 딸 메리가 오스트리아의 맥시
밀리언 대공(후에 로마 제국 황제)으로부터 최초로 기록된 다이아
몬드가 박힌 약혼 반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로 인하여 15세기에 다이아몬드와 사랑 사이의 결합이
가장 먼저 생겨났다.
 
여자가 왼손의 세번째 손가락에 이것을 끼는 것은 '사랑의 정맥'이 심장에서 곧 바로 왼손의 세번째
손가락으로 연결된다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믿음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부유한 가정에서는 결혼식에 앞서 가까운 친척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약혼
식을 올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손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결혼할 두 사람이 약혼반지로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서로 끼워주는 관습이 있었다. 그들은 다이아몬드를 지혜와 용기, 미와 부의 상징
으로 또한 두 사람을 결합시키는 사랑의 호신부로 믿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악독한 악령이라도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에는 겁을 먹고 접근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당시 약혼 반지로서의 다이아몬드는 결정 그대로를 둘로 쪼개 피라미드 형태로 그 자연스러운 면을
연마하기만 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약혼 반지, 결혼반지는 다이아몬드를 이 같은 전통적
인 양식으로 디자인해서 많이 쓰고 있는데 이것은 다이아몬드를 사랑의 상징으로 믿는 관습이 예전보
다 더욱 일반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